재즈계의 걸출한 기타리스트 중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은 웨스 몽고메리의 음반이다. 찰리 크리스찬 이후 기타가 진정한 솔로로 다시 태어나면서 케니 버렐, 존 맥러플린, 탈 팔로우등 위대한 기타리스트의 계보를 이어 가는 웨스 몽고메리의 뛰어난 앨범이다. 이앨범의 가치는 비밥, 하드밥등의 연주를 보여 주었던 'Incredible Jazz Guitar' 또는 'Full House'와는 달리 팝적인 요소로 무장한 앨범이라는 것이다. 장중한 오케스트레이션과 부드럽고 샤우트한 웨스의 핑거링은 아름다운 선율을 지닌 기타의 참된 맞을 보여주고 있다. 놓칠수 없는 곡 'Bumpin'이 수록되어 있다.
해설
Wes Montgomery
웨스 몽고메리의 부드러운 기타연주는 감동적이면서도 기교에 편향되지 않으며 일렉트릭 기타 연주시 피크대신 엄지 손가락으로 텃치함으로써 더욱 경쾌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이런 연주 방법은 후배 기타 리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웨스 3형제는 모두 재즈뮤지션으로 활동했는데 웨스는 둘째였으며 거의 독학으로 기타거장이 된 셈이다. 1948년Lionel Hampton악단에 들어가 명성을 쌓았으나 별로 독특한 활동을 보이지 못한채 1950년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1955년 Montgomery-Johnson Quintet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점차 명성을 되찾게 된다. 1959년 리버사이드 레코드사에서 녹음한 앨범을 계기로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재즈계의 거장으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후에 그의 연주는 다분히 대중적이었지만 그만의 독특한 애드립을 잃지 않고 화려한 연주 활동을 선보인다. 1965년 "Goin' Out Of My Head"앨범이 그래미상을 수상했으며 1967년에 발표한 "A Day In The Life"가 그해 가장 인기있는 베스트셀러 앨범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Charlie Christian 사후 가장 영향력을 행사한 기타리스트로 웨스를 꼽고 있으며 경쾌한 텃치와 스트링 기법은 일종의 신비로까지 불리운다. 특히 그 유명한 스케일주법 또한 듣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재즈대백과전서
비운의 천재가 남긴 '경이로운 재즈 기타'
1993년은 온통 웨스 몽고메리에 관한 화제로 들떳던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왜 갑작스럽게 재즈계에서 별 비중도 없는 일렉트릭 기타 주자 웨스 몽고메리냐 하겠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우선 그가 죽은 지 25주년이 지난 시점이기도 하거니와 또 그 긴 세월 동안 그가 재즈계에 끼친 영향력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평가가 어느 정도 정리된 시점이기 때문이다. 현재 재즈계를 주릅잡는 스탠리 조단, 조지 밴슨 등의 기라성 같은 기타리스트의 뒤에 웨스의 그림자가 아직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웨스 몽고메리는 1925년 3월 6일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주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흥미를 가졌던 그는 이미 13살때에 프로 악단에 가입할 정도로 솜씨를 보였는데 이때엔 손이 작아 4현 기타를 만졌다고 한다. 그리고 갖은 고생 끝에 1959년 대망의 리버사이드에 진출하였다. 서해안에 위치한 이 레이블은 쳇 베이커나 아트 페퍼와 같은 뮤지션이 속한 전형적인 웨스트 코스트 재즈를 표방하는 곳이었고 이곳에서 숨겨진 거장의 웅지가 드디어 펼쳐졌던 것이다. 존 콜트레인이면 콜트레인만이 낼 수 있는 맛. 마일즈 데이비스면 데이비스만이 내는 맛, 그런 면에서 곡에서 느껴지는 원숙하고 압축미가 넘치는 느낌은 역시 웨스만의 맛이 아닐까. 음악을 직접 연주해 보거나 관심 있게 주시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런 애매모호한 분위기의 곡을 연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웨스가 없었다면... 당연히 조지 벤슨이나 스탠리 조단과 같은 기타리스트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지나친 단정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 앨범은 이 불운한 천재의 젊은 날의 초상이 담겨 있고, 노년의 대가에서나 나올 법한 노련한 솜씨에는 그저 탄복할 뿐이다. 평소 재즈 하면 테너 색소폰이나 트럼펫부터 찾으면서 피아노나 혼 섹션이 빠진 재즈는 따분하다고 고개를 내젖는 나임에고 불구하고 웨스 몽고메리 앞에서는 왠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요즘 같은 전자 악기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시대에도 아직 손때 묻은 낡은 음악에 집착하는 재즈 팬들을 보면 역시 대가는 악기의 한계나 시대의 굴레를 초월해 공통적으로 감동을 전해주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피에로의 유래
프랑스에서는 일반적인 남자명 피에르(Pierre)의 애칭. 원형은 16세기 이탈리아의 즉흥희극 콤메디아 델라르테에 등장한 어릿광대 페드로리노인데 17세기 후반 파리에서 인기를 얻은 이탈리아인 극단의 배우 주제페 지라토네에 의하여, 흰색의 주름잡힌 폭넓은 칼라가 달린 의상을 입고 얼굴을 하얗게 분칠한 피에로 특유의 분장과 성격이 대략 이루어졌다.